기본 문항 · 중학생도 풀 만한 수준
2006년 3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서울) 언어 영역
지문 · 2006년 3월 고1 학력평가(서울) [41~45] (㉠~㉤, ⓐ~ⓓ, [A] 표시 포함)
용골대가 한성(漢城)에 침입하여 보니 국왕(國王)이 이미 피란(避亂)하고 대궐(大闕)에 없으므로 아우 용홀대에게 한성을 점령(占領)케 하고 스스로 기병(騎兵) 오천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추격하여 성중(城中)을 향해 총을 쏘매, 화살이 비오듯 했다.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워밍업 · 웹툰 말투로 먼저
이 이야기는 주로 무엇으로 흘러가나요?
지문 · 2006년 3월 고1 학력평가(서울) [41~45] (㉠~㉤, ⓐ~ⓓ, [A] 표시 포함)
용골대가 한성(漢城)에 침입하여 보니 국왕(國王)이 이미 피란(避亂)하고 대궐(大闕)에 없으므로 아우 용홀대에게 한성을 점령(占領)케 하고 스스로 기병(騎兵) 오천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추격하여 성중(城中)을 향해 총을 쏘매, 화살이 비오듯 했다.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워밍업 · 웹툰 말투로 먼저
박씨가 용골대를 살려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요?
지문 · 2006년 3월 고1 학력평가(서울) [41~45] (㉠~㉤, ⓐ~ⓓ, [A] 표시 포함)
용골대가 한성(漢城)에 침입하여 보니 국왕(國王)이 이미 피란(避亂)하고 대궐(大闕)에 없으므로 아우 용홀대에게 한성을 점령(占領)케 하고 스스로 기병(騎兵) 오천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추격하여 성중(城中)을 향해 총을 쏘매, 화살이 비오듯 했다.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상감이 이런 혼란(混亂)으로 어쩔 줄 모르고 [ ⓐ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홀연(忽然)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상감께서는 항서(降書)를 써서 용골대에게 주소서. 용골대는 세자 대군 삼형제를 볼모로 잡아가고 난리는 일단 끝날 것입니다. 신첩(臣妾)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妻)입니다. ㉠신첩이 한 번 나아가 칼을 들면 용골대의 머리와 호병(胡兵) 삼만을 풀 베듯 할 것이나 천의(天意)를 어기지 못함이니, 신첩의 죄를 사하소서.”
용골대는 항서를 받은 후에 세자 대군과 왕대비전을 데리고 떠나갔다.
한편 계화는 박씨 집의 후원(後園)에 용홀대의 머리를 베어 박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은 그놈의 머리를 높은 나뭇가지에 달아매어 두었다가 그놈의 형 용골대가 와서 보고 낙망(落望)케 하라고 일렀다. 그 후 용골대가 한성으로 들어와서 동대문으로 들어오다가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侍婢) 계화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 ⓑ ]하여 벽력(霹靂)같은 호통을 치자, 박부인은 계화를 불러서 명(命)했다.
“네가 저놈을 죽이지는 말고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서 우리 도술(道術)의 솜씨를 보여라.”
계화가 맞아 싸운 지 십여 합에 용골대는 계화의 무술 실력에 당하지 못할 것을 알았으나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삼백 근 철퇴를 둘러메고 계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계화가 거짓 패하여 달아나자 용골대는 그 뒤를 바로 쫓으며 호통을 쳤다.
“㉡이년, 네가 달아나면 안 잡힐 줄 아느냐?”
[A] 계화가 잡았던 칼을 공중에 휘저으며 진언(眞言)을 외우매, 모래와 돌이 날리고 사방에서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병졸(兵卒)이 아우성을 치고, 에워싸 들어오고, 눈과 비가 크게 퍼부어서 순식간에 물이 한 길도 넘으니, 용골대 수족(手足)을 놀리지 못하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살려달라고 [ ⓒ ]했다.
“네가 그럴 뜻이라면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를 이리로 모셔 오라.”
박부인이 급히 뜰에 내려 왕대비전을 맞아 통곡(慟哭)하며 불행(不幸)을 위로(慰勞)하고 계화에게 명하여 용골대를 석방(釋放)시키니, 계화가 박씨의 명을 받고 나와서 용골대에게 말하기를,
“㉢너를 여기서는 용서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의주(義州)에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당할 것이니, 의주에 도달하는 즉시로 의주 부윤 임경업 장군에게 배례(拜禮)하고 이 글을 보여 드려라. 그러면 임장군이 너를 용서하고 돌려보내리라.”
용골대가 의주에 이르자 임경업이 비호(飛虎)같이 달려들며 벽력같은 소리로 용골대를 질타(叱咤)했다.
“이 [ ⓓ ]한 오랑캐 장수야. 어서 내 칼을 받아라!”
용골대는 황망(慌忙)히 말에서 내리며,
“㉣장군은 노기(怒氣)를 풀고 잠깐 이 글을 보시오.”
하고 이시백 부인 박씨의 편지를 올렸다.
‘이번 우리 조국의 국운(國運)이 불길(不吉)하여 이런 일을 당하였으나 하늘이 호국(胡國)과 조선(朝鮮) 두 나라가 종속 관계(從屬關係)가 되라고 정(定)하신 운수여서 용골대가 상감의 항서를 가지고 세자 대군 삼 형제 분을 모시고 귀국(歸國)하는 것이니, 장군은 분(憤)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이 일행을 무사히 가게 하여 삼 년 후에 세자를 무사히 환국(還國)하시게 함이 상책(上策)입니다. 장군은 부디 이 말씀을 믿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상감은 산성에서 항서와 함께 왕대비전하와 세자 대군은 호국에 보내시고 침식(寢食)이 불안하던 중 하루는 공중(空中)에서 선녀(仙女) 한 명이 내려왔다.
“신첩은 광주 유수 이시백의 처 박씨로소이다.”
“㉤경(卿)의 지략(智略)을 매양(每樣) 탄복하던 중 이제 경의 모습을 보게 되니 과인(寡人)의 마음이 매우 기쁘오.”
임금은 이시백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한성으로 향발(向發)하여 환궁(還宮)하셨다.
- 지은이 모름, 「박씨전(朴氏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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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서 용골대는 살려 달라고 어떻게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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